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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a Agis

매듭을 짓는 법

        제국과의 전쟁 이후 피해 복구에 전념하던 국가들은 거리가 제구실을 갖추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듯했다. 갈루스에 병합되어 있던 국가들은 하나둘씩 무너졌던 자치 기구를 다시 세워 구호품을 나누어 주는 등의 행정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알드룬, 도스부터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동부 대륙의 재건이 시작되었고, 이는 엔타로니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검은 인영이 그림자를 따라 건물 뒤로 넘어갔다. 벽 너머에서부터 들려오는 고함과 분에 가득 찬 목소리를 들으며 청년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자경대가 그의 본래 거처를 에워싼 이상 당분간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 차라리 그들을 처치해서라도 진입하는 방법은… 지금의 위기는 모면하겠지만 그뿐이다. 금세 그의 위치가 전 대륙에 발각될 테고, 어쩌면 그 녀석을 다시 마주칠지도 몰랐다.

 

        넌 원래 그런 놈이 아니었잖아. 식상하게 왜 이래? 꼭 지금 클리셰 덩어리의 소설을 써야겠어?

        너… 변했구나. 전부 알면서 이러는 거지? 배신자. 난 널 믿었는데.

 

        픽, 바람 빠지는 듯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날의 재회를 떠올릴수록 비실비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힘주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엘프 녀석. 혼자만 동떨어진 옷차림에 말투에 기억들까지. 어느새 싱긋 웃고 있던 입꼬리가 무겁게 쳐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결코, 오랜 친구와의 살가운 재회는 아니었다.

 

        “저기 있다!”

 

        몰려드는 발소리에 그는 몸을 움직였다. 등을 기대고 있던 담의 맞은편 건물로 다가간다기엔 과하게 빨랐던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짧은 도움닫기를 밟아 벽을 타고 올랐다. 여전히 수습되지 않은 잔해가 남아 있어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발코니의 난간을 디딤돌 삼아 뛰어올라 튀어나온 단차를 움켜쥐고, 이따금 제게 달려드는 총알 세례를 아이기스로 막아내어 그는 간신히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지붕 위에선 모든 것들이 터무니없이 작아 보였다. 체자렛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공중요새를 만들어 하찮은 미물들을 내려다보는 감상은….

 

        “잡아라!”

 

        전쟁을 주도한 갈루스의 주요 인사들과 병사들은 재판을 받는다고 했다. 지금 그들 대다수는 아발론으로 이송되었지만, 연합 내에서도 각 나라 간의 의견이 팽배한 모양이었다. 서로 자신의 나라에 피해를 준 인물의 처분을 자신이 맡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모두 그러고 싶겠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래서 엔타로니아의 사람들이 그를 그토록 쫓는 것이라고. 그는 직선으로 뻗은 지붕 위를 내달렸다.

 


 

        전쟁이 끝난 뒤 아발론은 바쁘게 굴러갔다. 전 대륙을 아우르는 전쟁이었기에 그 규모 또한 거대했고, 피해 또한 막심했다. 세계가 멈춰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멈춘 세계를 굴러가게 만든 것이 연합의 중심이었던 아발론이었으니 단단하게 굳은 세계가 움직이며 떨어져 나온 파편들을 정리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그동안 군주가 자리를 비워 밀려있던 정무를 해결하는 일부터 전쟁 직후 국가들의 사후 처리물론 그 안에는 전범을 저지른 갈루스 인사들의 처분도 포함되어 있었다를 돕는 일까지.

 

        그리고, 엄연히 그것은 군주의 몫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왕의 말이라면 응당 기사들은 따라야 하지만 정무를 내팽개치고 진군을 하며, 뒷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여러 국가의 수장들에게 책임져야 할 언사를 내뱉었던 것은 군주만이 아니었던가? 난 말이야… 널 정말 아끼지만, 가끔 보면 짜증 날 때가 있어. 언젠가 누군가가 그에게 했던 말이지만 아마 아발론의 모든 기사라면 한 번쯤은 떠올렸을 법한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뭐, 내 소관은 아니지만.

 

        “프라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려는 듯한 노력은 가상했으나 눈 밑에 진한 다크서클을 매달고 온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하?”

        “놀리지 말고. 엘펜하임은 바쁘지 않아? 바로 와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뭐, 우리 마탑주들이 좀 힘내고 있지. 거대 메기랑 새끼 메기들이 엘펜하임을 점령했었다곤 하지만 그것도 다 예전 얘기고.”

 

        알잖아. 그렇게 일축한 말 뒤에는 여러 의미가 숨어 있었다. 확실히 엘펜하임의 사태는 심각했지만, 아발론의 도움으로 하루빨리 물리친 덕에 연합이 중부 대륙으로 진군하는 동안 피해를 수습할 수 있었다. 견고한 원로원과 현명한비록 누군가는 재앙의 출현을 가속시킨 장본인이지만세 마탑주들은 건재했으며, 엘프들은 그 아래에서 힘을 모았다. 어쩌면 수백 년을 살아온 엘더 엘프의 숨겨진 능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프라우, 당신은 우리와 달라요. 보수적인 엘프 사회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시야는 항상 저 밖을 향해 있죠. 전 당신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망할 영감님. 이전에 나눈 대화를 떠올리자 미세하게 눈썹이 꿈틀댔다. 차기 마탑주로 임명하겠다고 얘기하던 날. 창밖으로 바라본 설산은 유난히 눈발이 거세게 흩날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는 아발론이 있고, 그보다 더 멀리 까마득한 너머에는 갈루스가 있다. 프라우는 그곳에 있을 제 친구들을 떠올렸다. 제 앞에 놓인 코코아보다, 제가 앉은 안락한 소파보다 더 따듯하고 편안한 그들을 언젠가 만날 날을 고대하면서. 프라우의 마음은 항상 그 너머를 향했지 엘펜하임에 있던 적이 없었다.

 

        “게다가, 급한 일이라면서 날 부른 건 너잖아.”

        “응… 뮤가 내게 뭔가를 알려줬는데, 아무래도 네가 적임자인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 싫으면 안 해도 돼.”

        “뭔데 그래? 말했지만 날 지루하게 만드는 것만 아니라면 상관없어.”

 

        어쩌면 바로 만나러 가지 않은 것이 실책이었을지 모른다고 프라우는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변명하자면, 그는 멋대로 자신이 살며 무언가 쌓아왔던 세계를 무로 되돌린 회귀자를 향한 미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다음에 만나면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충실하며 쓸모있는 정보를 전달해주고 싶었다. 그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더 이상 프라우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npc, 달리 말하자면 조력자로 사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고 저번 생으로부터 느낀 것이다.

 

        하지만 아직 엔딩롤이 올라가기엔 좀 이르지 않은가. 그에겐 에필로그가 남아 있었다.

 


 

        “지금에서야 네가 숨바꼭질에 관록이 있는 걸 알게되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에 이렇게 전 세계를 무대로 우리끼리 게임이나 하나 해야 했던 건데.”

        “그러니까, 내가 곧 재앙이 될 거라고….”

 

        프라우는 홀로 생각에 잠긴 아이아를 뒤로하고 그의 임시 피난소 안을 살폈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일 뿐이었는데 단순히 잔해인 것 뒤로 들어와 보니 급조했다지만 나름 필요한 것들은 전부 갖춰져 있었다. 과연 누가 전쟁으로 사람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는 공간을 살필까. 이리도 다가서기 불길한 곳은 또 없으니 장소 하나는 잘 정한 셈이었다. 그래도 다시 만났을 때 보았던 무시무시한 무기들은 미처 챙기지 못했는지 텅 빈 벽이 황량하다. 어쩌면 프라우에게 아이아는 그를 놀라게 해줄 가지각색의 기계들로 가득한 공방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또는 이곳 사람들과는 좀 다른 미적 감각을 흔쾌히 구현해주던 것이나.

 

        “나도 모르겠는데, 뭐 그렇다더라.”

        “너무 태평한 거 아냐? 그 말대로라면 나는 머지않아 전 세계를 위험에 빠트리게 된다는 건데.”

 

        아이아는 방금까지 자신을 쫓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저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가 갈루스를 도와 그들의 나라를 멸망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멸망시킬 위험이기에 막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초지능 인공위성이 알려주었다면 당연히 그의 계약자인 아발론의 군주도 알고 있을 터였다. 더 나간다면 황제, 체자렛까지도……. 죄인 신분인 그들이 알아봤자 뭐가 얼마나 더 달라지겠느냐마는.

 

        “그래서 말해주러 왔잖아.”

        “혼자서 날 막겠다고?”

        “나 혼자선 재앙인 너는 무리이긴 하지. 하지만… 네가 재앙이 되는 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이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재앙에 대해선 밝혀진 것이 극히 적다. 고대 문명도 재앙의 출몰로 멸망했다는 설이 가장 정설로 나돌아다니는 가운데 이를 막겠다는 것인가? 아이아는 잠시 제 귀가 잘못된 것인지 의심하다가, 곧 아발론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체자렛조차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약해졌다 해도 엘펜하임에 등장한 괴수와 타락한 신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아발론와 연합에게 도움을 받고 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아는 부러 조소를 흘렸다. 낮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바람 빠지는 한숨 소리와 함께 서늘하다 못해 냉풍이 불었다.

 

        “네가 어떻게?”

        “글쎄… 나도 모르지만, 네가 그렇게 된 것에는 어느 정도 내 책임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그렇게?”

 

        홉뜬 채 바라보는 아이아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하자 프라우는 온몸을 굳혔다. 분명히 자신이 알던 아이아의 모습은 좀 무뚝뚝하긴 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불편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아는 좀… 달랐다. 싸늘한 시선이나, 영혼 없는 미소가 꼭 부동의 조각상을 보는 듯 했다. 이것도 갈루스의 영향인가? 프라우는 똑같이 머리가 흰 누군가를 생각해냈다. 안 봐도 체자렛이 사람을 망친 것이겠지. 그게 주특기니까. 석상같이 굳은 몸을 겨우 움직여 눈살을 찌푸리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맑게 비치는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실루엣이 퍽 낯설다.

 

        “그러니까, 내가 회귀하고 바로 널 만나러 갔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라고. 넌 원래 그런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겨우 그런 일로 쫓기던 자신을 구했다니, 정말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아이아가 프라우를 알아차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동부대륙의 협동전선으로 남은 제국군을 몰아내는 와중에 자신은 발각되었고 한참을 쫓기던 중에 그가 나타났던 것이었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블레이드는 거대한 눈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아이아는 소유주를 알아보기 전 순간적으로 체자렛의 이름을 떠올렸다. 잔해들과 시체들로 길이 험한 와중에 아이아는 달리는 것을 잊지 않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뒤쫒는 그것의 정체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엘펜하임의 수색용 드론이었으면 더 좋았을 일을.

 

        아하. 그제야 알았다는 듯 경쾌한 음성을 내는 아이아에게서 이전 세계에서 보았던 제 친구의 모습이 조금은 엿보였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새로운 시작일지도 몰랐다. 비록 서로 적으로 만났으나 지금부터는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서로 대하던 대로 대한다면 지금과 같은 특이점은 없을 거라고, 그런 기대감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그 속에는 동시에 지금 세계에서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이질감도 함께였다. 원래의 아이아라면 제가 겨우 그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닐 천재 같냐며 차갑게 화를 낼 망정, 프라우에게 제국의 수하라고 칭해지고도 눈매를 접어 웃으며 수긍할 위인은 못 되었다. 아이아는 원래 그런 녀석이 아니었다. 그러니 저 침묵은 수긍에 가깝다는 말이다. 프라우의 얼굴에서 미소가 서서히 녹아내렸다.

 

        “원래 그런 녀석이 아니었다니. 그럴 리가.”

        “……너.”

        “동부 대륙 합병 작전에는 알드 룬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도록 힘쓰는 동시에 엔타로니아와 에버다인의 함락에 조언과 도움을 줬지. 서부, 중부 대륙에서는 갈루스의 체자렛 알티온 전략 참모 아래에서 자문 역으로 활동했고, 페르사에 프레데릭을 배치해서 마력과 인과율의 흐름을 살펴보자고 한 것도 내 아이디어였어.”

        “그때… 진심이었던 거냐?”

        “글쎄, 내가 원래 그런 녀석이 아니었다고 할 수도 없지 않겠어?”

 

        시야 가장자리로 주의를 돌리니 익숙한 자색광이 옆쪽의 벽면을 물들이고 있었다. 6개의 블레이드가 소리없이 다가와 제 목을 겨누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었다. 녀석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이들 중 하나가 튀어나와 자신을 뚫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이것들의 운용법은 모두 자신이 가르쳐 주었는데 괘씸하기 그지없다. 아이아는 모로 뜬 눈동자를 굴려 다시 프라우를 바라보았다.

 

        “안심해, 나쁜 마음을 먹은 적은 없어.”

        “네가 제국과 손을 잡은 모습을 봤었는데, 그걸 믿으라고?”

 

        아야. 아이아는 부러 과장해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수평선을 그리던 눈썹의 끝이 아래로 쳐지고 앞에 서기만 하면 꿰뚫리는 듯한 착각으로 온몸을 굳게 만들던 눈은 상대방이 아닌 바닥을 향했다. 그러나 평온한 그의 목소리는 텅 빈 속 알맹이처럼 메마른 기색이 묻어났다. 아이아는 이를 가장할 생각조차 없었던건지 기껏 일그러뜨린 얼굴과는 조화롭지 못했다. 프라우는 그 모습에서 언젠가 만났던 갈루스 병사를 떠올렸다. 온몸을 기계처럼 개조하고 생각과 감정을 잃어버린 이들. 저것도 체자렛의 짓? 아니면 재앙화의 징조? 생각의 불씨가 다른 곳으로 튄다.

 


 

        “유니버스와 계약하지 않은 자들은 스스로 쌓을 수 있는 인과율에 한계가 있어. 하지만 애초에 유니버스에 존재하지 않던 개체라면 유니버스의 제약에서 자유로우니 한계가 없어. 여기서 한계란,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양과 최대로 얻을 수 있는 양의 한계를 모두 포함해. 이를 통해서 해당 개체가 비정상적으로 인과율을 획득했다면, 해당 개체의 존재가 유니버스에 발각되는 순간 균형을 이루려는 세계의 순리대로 재앙으로 발현할 거야.”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비정상적으로 많은 경험치를 얻는 버그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 쓰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아무도 모르지만 세계 1위인 로드의 경험치 랭킹을 뛰어넘으면 운영자가 눈치 채서 제제를 먹게 된다, 이거지?”

        “프라우, 네 말은 어려워….”

        “이해했으면 그만이지!”

 

        너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프라우는 뒷말을 삼켰다. 애초에 이 세계에서 그의 얘기에 공감할 수 있는 자가 존재하지 않으니 자신이 특이한 취급을 받는 거겠지.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대화는 결국 혼잣말이 되기 마련이다. 프라우는 대화의 주제가 되는 그 녀석과의 재회를 떠올렸다.

 

        어느 순간 깨달았지. 난 가족도, 고향도, 집도 없다는 것을. 그냥 어느 순간부터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어.

 

        프라우는 정확히 기억했다. 회귀하고 나서 생겼던 자신의 새로운 가족, 고향, 집을……. 두 번째 생에선 갈루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던 게일문드에서 꽤 화목하게 지내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집을 뛰쳐나왔다. 여느 스토리의 도입부처럼 불타는 집에서 모두 죽은 가족의 시신을 보고 생존을 위해 도망쳤던 것도 아니었다. 이전 생의 기억이 전부 돌아온 날, 프라우는 세계가 자신에게 준 과거를 모두 버렸다. 그러고선 이전 생의 자취를 따라 아이아를 만나러 갔다. 어쩌면, 아이아에게 자신은 기만자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번 생에서 다시 만난 아이아에게 이전 생에서 자신과 함께했던 과거를 말해줬다면 위로가 되었을까?

 

        “그래서, 그건 어떻게 막는데?”

        “바로 하겠다고 나설 줄은 몰랐는데.”

        “엘펜하임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네가 그랬잖아. 내가 적임자라고.”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녀석의 과거를 지켜주진 못했어도 미래는 지켜주고 싶었다. 단순히 존재해선 안 되는 자이기에 삭제를 당한다면, 그렇게 세계에서 부정당한다면 억울할 테니.

 


 

        쿡쿡 낮게 웃는 소리에 프라우는 상념에 잠겨있다 깨어난다. 벽에 모로 기대어 선 아이아는 드리워진 그림자에 금방이라도 삼켜져 버릴 듯했다. 겨우 기둥 뒤에 선 것이라 해도, 하얗게 센 머리칼이 어둠 속에서 유독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프라우는 거칠게 제 눈을 비벼 정신을 다잡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이아의 목을 겨냥하던 이오케이라는 정처 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더니 어느새 프라우의 몸 주변에 빙 둘러져 바닥과 수직인 자세가 되었다.

 

        “난 단지 내가, 네가 알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

        “대부분은 그렇지. 하지만 넌 그럴 수 없어.”

        “그걸 어떻게 확신해?”

 

        프라우가 입을 굳게 닫았다. 아이아는 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예상했다는 듯 권태로운 눈빛을 피난소의 구석으로 돌렸다. 단단한 보석처럼 조금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는 눈이 답지 않게 허공을 헤맸다. 아이아가 기둥을 짚고 있던 손을 끌어 팔짱을 꼈다. 정적이 계속될수록 초를 세는 손가락이 분주해졌다. 아무 일도 없다는 지루함 때문일지도 몰랐다. 혹은 앞으로 닥쳐올 일들 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것일지도……. 한참이나 고민하다 차라리 돌아가라고 말하기 위해 닫혀있던 입이 열렸다. 고개를 들은 얼굴엔 아까의 험악했던 표정은 이미 사라지고 웃는 것인지 진지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모습만 남았다.

 

        “넌… 아이아 아지스잖아. 안 그래? 네가 걸어온 행보를 마냥 긍정 할 순 없겠지만, 네가 어떻게 살았건 너는 아이아 아지스라고. 내가 너를 모른다 해도 이거 하나는 알아.”

        “…. 단순한 귀결이네.”

        “뭐, 어디 사는 감자 마니아 녀석이랑 친하게 지내다 보니 닮았나 보지. 아무튼, 내가 널 완벽하게 알진 못하지만, 너도 사실 그렇잖아. 네 말대로면 너도 나를 잘 몰라.”

        “….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너랑 나는 통하는 게 있잖아, 친구. 나는 말이야, 적어도 이 세계에서 날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런 사람이 없어도 충분할 줄 알았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기껏 알아냈더니, 이젠 네가 나랑 비슷해지니까 흥미가 생길 수 밖에 없지. 알잖아? 내가 재미있는 거는 가만히 냅둘 줄 모르는 성격인 걸. 그러니까, 네가 재앙이 되게 내버려 두지 않아. 네가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쉰다고 느낄 때까지.”

 

        한참이나 적막이 흘렀다. 프라우는 아이아의 눈을 노려보았다. 불꽃과 같이 일렁인다고 착각할 정도로 또렷한 눈동자가 자신을 뚫어보았다. 어쩌면 제 눈은 보석이 아니라 잘 깎인 얼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타는 의지가 담긴 모습을 마주하면 상대방을 냉혹한 추위에 굳게 만들지 못한 채로 제게 있는 무언가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사실 그와 다시 만났던 첫 조우에서도 그렇지 않았었나. 그럼에도 굳이 날을 세우는 것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내 삶을 의미 없게 만든 것이 너라는, 일종의 선언. 아이아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지 않았다.

 

        “아하하… 아무래도 난 너에게 약한 모양이다. 그래, 내가 이 세계를 진짜라고 여길 때까지.”

 

        잘 부탁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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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선물로 드림연성을 주는 실친이 있다?! 오랜 친구 불나방이가 써준 글입니다. 고맙다!!

 

친구가 독자적으로 풀던 재앙이 되는 엘리트 이아썰과 제가 모자른탓에 한데 모아 언급한적 없던 엘리트 프랴의 파편들을 멋지게 엮어줬습니다. 걱정도 말도 많은 사람이라 줄마다 주석을 달아서 여긴 이런 뒷사정이 있습니다 하고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전반적으로 가볍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봐주시면 될것 같아요. 엘리트 시간선의 이아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프라우의 마음이 어떤지. 친구랑 글을 놓고 얘기를 하면서 이아의 행보가 읽는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을 조금 많이 했는데... 보다 위에 언급한 것들에 초점을 맞춰주시면 제가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쪼금 믿고있습니다 덜덜

 

저렇게 말해두고도 걱정으로 가득찬 문단을 쓰다가 정신차리고 날려먹고왔는데, 글에 대한 감상이 아닌 이야기에 대한 감상은 제게 보여주시거나 메인 트윗 타래의 질문박스로 보내주시면 제가 좋아하기에 앞서 큰 안심을 얻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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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a Agis  (0) 2021.02.21
트윗 백업(200803~210219)  (0) 202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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